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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17년 2월 NN일

 

사방이 고요해졌다.

 

무언가가 깨지는 파열음, 소리 높여 적에게 퍼붓던 주문, 누군가의 우는 소리, 다친 친구를 옮기는 학생들의 고함소리,

온 학교를 잠식했던 비명 소리.

 

그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, 불길한 적막만이 이곳을 잠식했다.

그리고, 모두가 잠들어 있었다.

 

ㅡ아니, 모두라기엔 어폐가 있을까.

어림짐작하여 서른 명쯤의 학생들은 아직 그 자리에서 그 눈을 뜨고 있었다.

갑자기 쓰러져 잠든 이들을 향해 말을 걸어보기도, 깨우려 애를 쓰기도 하며, 그렇게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.

 

아냐, 주위를 둘러봐.

그곳에는 네 친구들만 있는 것이 아니야.

 

연회장 중앙, 그곳에 위태롭게 서 있던 것은, 학생이 아니었다.

아주 하얗게 빛나는,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모양의 그는, 주위를 둘러보더니 씨익 웃곤 중얼거렸다.

그는 아무도 못 들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, 나는 똑똑히 들었다.

 

그가 <이름을 잃은 이들에게 축복을>이라고 읊조린 것을.

 

이름. 어? 이름.

낯익은 학생들, 그럼에도 기억나지 않는,

그들의 이름.

 

누구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다. 며칠 전까지는 정겹게 부르던 그 이름,

이젠 적의 편에 적힐지, 우리 편에 적힐지 모르는 그 이름.

 

남자는 소름끼치게 키득거리더니 크게 외쳤다.

 

잠들지 않은 사람은 오랜만이군!

반갑다는 의미로, 자네들에게 짧막한 평화를 선물하겠네.

일단 이곳은 복잡하니 자리를 옮기도록 할까?

 

그의 말이 끝나게 무섭게, 하나, 둘.

잠든 사람들이 눈 앞에서 사라져갔다.

모두가 믿지 못하는 광경, 그 속에서 웃고 있는 것은 그 남자 하나 뿐이었다.

자리를 바꾼 것 뿐이라며. 무얼 그리 놀라냐며. 비웃은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당부했다.

 

명심하게, 내가 선물한 평화는 아주 달콤할 것이고,

그것은 내 게임을 재밌게 만들 포석일 뿐이니.

누구에게도 자네의 그 이름을 가르쳐주진 말게.

그것이 자네를 승리로 이끌 것이니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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